결국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여전히 노동조합을 ‘정치적 기관’으로 혹은 ‘정치적 엔진’으로 생각한다. 기관과 엔진은 있으나 사상과 지도가 없는데 그것은 노동자주의라는 애매한 주의로 대체한다. 그리고 여전히 현재의 민주노총등 민주노조운동은 노조중심의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을 노동자 정치세력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노동계급정치가 아니라 범계급연합정치일 것이다. 계급정치 없는 진보정치, 그리고 좌파없는 노조정치 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글로벌리즘의 끝에는 역사적으로 대규모 지정학적 위기(19세기의 나폴레옹 전쟁, 20세기의 양차 대전)가 발생했는가? 이는 평화시의 통화 헤게모니(파운드 헤게모니, 달러 헤게모니)를 통한 착취가 더 이상 불가능해졌을 때 강제적 폭력적 수단을 통해 이를 관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맑스의 말을 빌자면, 비극이었던 첫 번째도 겪었고 소극이었던 두 번째도 겪었는데, 무려 세 번째인 이번에는 웃을 것인가 울 것인가?
덴마크, 스웨덴, 영국, 스페인, 핀란드, 노르웨이 등 유럽 각국의 지난 1년간의 기업 파산 건수는 2008년-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장 심했던 때보다도 더 많다... 이처럼 기업 파산 건수가 급증하는 것은 무언가 유럽에 심각한 구조적 변화, 혹은 기존 모델이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조건에 처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지배계급도 이를 알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최소한 21세기가 되기 전까지는, 비판적 지식인들에게는 적어도 헨리 키신저는 전쟁과 쿠데타, 비밀공작을 상징하는 최악의 악인이었다. 그의 부고와 조사 가운데 그를 ‘악당들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인물로 평가한다는 사실은, 또는 ‘엇갈리는 역사적 평가’를 운운한다는 것 자체는 지금 이 세계가 얼마나 퇴행하고 전락했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이 키신저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일 것이다; ‘인간’을 이 바닥까지 그토록 순조롭게 끌고 내려온 것, 그리고 이 바닥 밑의 무저갱을 보며 더 큰 공포에 자지러들게 만든 것. 하지만 부디, 천당은 없어도 상관없으니, 지옥은 꼭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하늘이 무심하지 않을 것이다.